

너무 만족해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적들이 있다면 그 중 한가지가 자신이 자신은 잘 하고 있으며, 문제가 하나도 없고, 믿음생활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신앙에 가장 치명적인 암적 요소이며 우리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굳어진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를 시작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John and Charles Wesley)의 신앙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불만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펴볼 때마다 나 자신과 불일치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찬송을 부르다가 멈추고 생각해보면 그 가사 내용이 내 삶과 일치하지 못하는 것도 보게 된다. 내가 위선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내 자신의 경험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찾고 살피기 시


거울 좀 보고 삽시다!
요즘 거울을 보면서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들어 가위를 들고 조금씩 잘라봅니다. 그러다보면 이전보다 더 삐툴거리게 되어서 결국은 제 아내가 다시 머리손질을 해 주게 되고 왜 그랬을까 하는 민망한 마음이 생깁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다. 신기하게도 얼굴에는 그 사람의 희노애락이 늘 드러납니다. 그래서 얼굴 관리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속설도 있을 정도로 그 만큼 얼굴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큽니다. 그리고 얼굴은 단순히 우리의 희로애락만 보일 뿐 아니라 영적인 층만과 침체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영적으로 충만하면 얼굴이 기쁘고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영적인 침체가 오면 말수도 적고 얼굴에 어두움이 깔리고 부정적인 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찬송의 소리가 입가에 흐르기 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그를 휘어잡고 이러한 모습은 대인 관계에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하게도 만듭니다. 사람들이 얼굴을 본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참 어렵고 험난한 시간을 보내며 광야의 긴 길을 잘 이겨내고 약속의 땅에 이르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나안에 오기 위해서 이집트를 포기하고, 홍해도 건너야 하고, 광야의 고난을 힘겹게 이기면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예요. 여리고성에 맞서야 하고 가나안 이방 민족을 정복해야만 비로소 가나안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4장을 보면 마침내 가나안 땅을 차지한 희열이 있어요. 그런데 기쁨을 만끽해야 할 순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섬길 수 없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수24;19] 힘들게 힘들게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